악재가 빛을 받아 호재가 되자
어둠 속에서 - 유로존·中 성장둔화·가계 빚… 우리 경제 위협할 3대 요인
빛이 보인다 - 美경제 최악의 상황 벗어나
위기 때 기회 잡는 한국 기업, 스마트·융합 찾아 선방 중
"빛은 어둠에서 나온다."(동양철학서 주역〈周易〉)
"어둠은 빛을 꺼트릴 수 없다."(성경 구절)
동서양의 철학, 종교를 대표하는 고전(古典) 모두 빛과 어둠을 공존하는 존재로 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세계 경제가 어둠 속을 헤맬 것으로 보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둠을 이길 빛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본지 경제부와 산업부는 올해 국내외 경제 흐름을 꿰뚫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암중유광(暗中有光)', 즉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인다'를 골랐습니다. 올해의 경제 사자성어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을 지혜를 찾아보십시오. /편집자
- ▲ 한국경제, 올해의 사자성어 "암중유광 (暗中有光·짙은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 동 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새해 국내외 경제는 불확실한 요인만 가득한,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위기에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여온 만큼 이번에도‘위기’를‘기회’로 삼는 저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은 인부들이 막바지 공사(공정률 85%)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신고리 3호 원자로 건설 현장.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暗中'-불확실성 키우는 악재는?
세계 경제에 어둠이 짙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들립니다. 이런저런 악재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는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선, 경제 주체는 보수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계는 소비를 억제하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입니다. 정부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지만, 재정 적자만 불어날 뿐 경기 진작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경제가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지요.
전문가는 올해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핵심 변수로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가계 부채 문제 악화 등을 꼽고 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유럽 재정위기는 재정위기의 특성상 해결이 쉽지 않는 문제"라면서 "유로존 국가가 실제 파산할 가능성이 낮다곤 하지만 재정위기가 오랜 시간 세계를 짓누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말합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중국의 성장률이 7%에 그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선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합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가계 부채 문제가 터지면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有光-위기를 기회로 만들 빛을 찾는다
나라 안팎 경제에 대해 암울한 전망 일색(一色)이지만, 그렇다고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률은 양호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주택 시장도 바닥 탈출에 나서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소폭 떨어졌고 소비 심리도 회복되는 모습입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미국이 완전한 회복세로 돌아선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대공황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고,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미국의 경기 회복이 세계적으로 경기 진작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는 올해 세계적 위기의 와중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하는 전문가가 의외로 많습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 기업들이 몸을 움츠릴 때 우리나라 기업들은 치고 나갔고 기회를 잡았다. 사실 세계 경제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우리나라 같은 후발 주자는 치고 올라가기 힘들다. 어수선한 환경에서 강한 것이 우리나라 기업들"이라면서 한국 기업의 위기극복 유전자(DNA)에 강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언제 우리 경제에 대해 비관적 전망이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느냐"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스마트와 융합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서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내에선 포스코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난리이지만, 포스코 시가총액은 현재 세계 철강회사 1위"라면서 "국내 기업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남규 서울대 교수는 "지금의 위기는 일행이 등산을 하다 곰과 만난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꼴찌만 안하면 목숨을 잃을 일은 없다. 경쟁자를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경쟁에서 이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생산성을 높이고 낮은 코스트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반도체·자동차 등 국내 제품 가운데 세계 1등이나 1등에 바짝 다가선 제품이 늘었는데, 위기 때는 1·2등과 4·5등 제품의 실적에 현격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결국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휴대전화 판매량 부문에서 노키아를 따돌리고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시장이 안 좋을 때 오히려 경쟁 기업과 기술 격차를 벌리기 좋다"면서 "나중에 시장이 좋아질 때 경쟁자보다 많은 과실을 거둬들이기 위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업종인 IT(정보기술) 분야의 가격 인하 압력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기회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실장은 "그동안 문제 되던 IT 공급 과잉이 부분적으로 완화되면서 국내 경기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