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아름다운 환상
어떤 책 제목처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어른도 매일 천 번씩 흔들린다. '환멸'이라는 단어가 있다. 꿈이나 환상이 깨졌을 때 느끼는 괴롭고 속절없는 감정이다. '환(幻)'과 '멸(滅)'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흔들리면서도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유는 우주의 영역에 속하는 그 비밀을 조금이나마 염탐해내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의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리프)는 '환'보다 '멸'에 가까운 삶에 속한 40대 여성이다. 작은 마을에서 아이 둘, 남편과 함께하는 생활을 십수 년째 이어가고 있다.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서랍장 속 나프탈렌처럼 그녀는 서서히 닳아져 갈 것이다. 그 사실에 문득 진저리가 날 무렵 한 남자가 나타난다.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다.
그들은 반대다. 프란체스카가 늘 한자리에 멈춰 있는 존재라면 로버트는 늘 떠도는 존재다. 낯선 남자는 단번에 매혹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게 닥친 사건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스파크, 운명, 단 한 번의 사랑. 무어라도 좋다.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나흘이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우주 속에서 이렇게 확실한 감정은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거요." 남자는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선택은 여자에게 넘겨졌다. 여자는 오래 주저한다. 남편의 차 옆 좌석에 앉은 채 손잡이에 손을 뻗을까 말까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떠날 수 있다. 남을 수도 있다.
환상을 좇을 텐가, 환멸을 삼킬 텐가.
프란체스카의 손가락은 결국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못한다. 평생의 사랑인지를 확신하기에 나흘이 너무 짧아서? 가족을 버릴 수가 없어서? 아니다. 그녀는 이미 너무 여러 가지를 알고 있어서다. '환'과 '멸' 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 어떤 아름다운 환상도 필연적으로 환멸이 되고야 말리라는 것을. 만 번을 흔들려도 견뎌야 하는 시간, 중년(中年)이다.
영웅이라고 일반인들보다 더 용감한(be braver than an ordinary man) 건 아니다.
다만 5분간 더 용감할 뿐이다"(미국 작가 랠프 애머슨).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a man who does what he can)이 영웅이다"(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