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함정
콜라 전쟁… 매출 1위 펩시 VS 브랜드 1위 코카
코카는 세계 곳곳서 독극물 사건, 환경 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대응 못해
펩시콜라가 지난 8월 14일 인도 출신 여성 인드라 누이(50)를 새 CEO로 맞아들이자 세계는 펩시콜라를 주목했다. 여성을, 그것도 미국 이민 2세가 아니라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인도인을 CEO로 앉힌 것이 화제였다.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린 펩시콜라의 새로운 수장이란 의미에서도 그랬다. 누이는 결단력 있으면서도 회사 행사 때 인도 전통복장인 ‘사리’를 입고 참석하고, 투자자 회의 때 단상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눌 만큼 격의 없는 성격으로 펩시콜라를 대표하게 됐다.
반면 코카콜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펩시콜라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월 말엔 북미사업부문 사장을 맡고 있던 도널드 크나우스가 사임했다. 코카콜라는 다른 기업의 대표를 맡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회사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전통의 라이벌이지만 그래도 코카콜라가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1886년 창립돼 120년째가 된 코카콜라가 12년 뒤인 1898년 태어난 펩시콜라보다 전통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미 2004년 매출액에서 ‘만년 2등’ 펩시콜라가 292억6100만달러를 올려 219억6200만달러에 그친 코카콜라를 눌렀다. 그 해 펩시는 매출에서 25%, 총 이익에서 10%나 코카콜라를 앞섰다. 그리고 작년 말 펩시콜라가 시가총액·매출·순익에서 코카콜라를 앞서면서 자신의 우위를 재확인했다. 작년 펩시콜라는 987억달러의 시가총액, 330억달러의 매출액, 11억1400만달러(4분기)의 순익을 기록했다. 코카콜라는 965억달러의 시가총액, 8억6400만달러(4분기)의 순익에 그쳤다. 코카콜라는 시장점유율 하락 등으로 주가가 최근 5년 새 5% 하락하자 132억달러에 이르는 자사주를 매입해야 할 지경에까지 처했다. 펩시의 주가는 3년 연속 두 자릿수 이상 올랐다. 작년엔 13.18% 상승해 코카콜라(-3.19%)와 대조를 보였다.
펩시콜라는 콜라로서는 도저히 코카콜라를 누를 수 없다는 사실과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웰빙화 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발 빠르게 제품 다각화를 추진했다. 주스·이온음료·스낵 등으로 영역을 넓혔고, KFC 등 외식업체와 제휴를 강화해 종합식료품 업체로 펩시콜라를 탈바꿈시켰다. 트로피카나, 퀘이커오츠 등 식품회사를 과감히 인수했다. 특히 선봉장으로 누이가 앞장섰다. 그녀의 주장으로 140억달러를 써내 스낵업체 퀘이커오츠를 인수한 건을 두고 당시 대표였던 로저 엔리코는 “펩시콜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품 다각화 결과 펩시의 사업 부문에서 탄산음료 이외 스포츠음료·과일주스·스낵·유통 등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인도 일부 주에서 ‘농약 콜라’ 파동으로 두 회사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펩시는 인도 여성을 대표로 내세우며 한발 빨리 대응하고 있다. 작년 5월엔 코카콜라 임원 여비서가 코카콜라 맛의 비밀을 팔겠다는 제의를 해오자 오히려 코카콜라 측에 이 사실을 통보해 줌으로써 이젠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펩시 세대’ 캠페인은 큰 효과를 봤다. 자신이 형이 아니라 동생이라는 위치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 코카콜라를 낡고 보수적인 것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은 영원한 새로운 세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0대의 반항적 이미지를 담기 위해 젊은 시절의 마이클 잭슨·라이오넬 리치·마돈나 등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이와 같은 ‘브랜드 포지셔닝(brand positioning)’을 통해 미래 주고객층을 형성할 청소년에게 자사제품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특유의 자유분방한 문화는 ‘코카콜라는 크렘린궁, 펩시콜라는 대학캠퍼스’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1970년대 중반 TV를 통해 내보낸 광고도 코카콜라를 추격하는 데 주효했다.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마시던 사람이 눈가리개를 벗으며 “어~ 펩시잖아!”를 외치게 하는 장면이었다. 입소문이나 이벤트로 인지도를 높이는 ‘버즈(buzz) 마케팅’을 사용해 펩시는 8년 만에 30%포인트 나던 시장점유율 차이를 10%포인트까지 좁히는 데 성공했다.
코카콜라는 ‘1등의 함정’에 빠져 신제품 개발이나 사업다각화에 소홀했다. 오히려 작년 탄산음료 마케팅에만 4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퀘이커오츠도 먼저 인수할 기회가 왔지만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시키고, 펩시에 내줬다. 코카콜라는 여전히 탄산음료가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을 읽지 못한 ‘공룡’은 후발주자에 선두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다급해진 코카콜라는 실적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이사들의 보수를 전혀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사였던 ‘월가의 전설’ 워런 버핏도 퀘이커오츠 인수 반대에 앞장섬으로써 옛 영광 재현에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을 뒤로 하고 회사를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카콜라에 불리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7월 말 콜라를 지속적으로 마신 게 건강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여성이 코카콜라 모스크바 지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 글로벌 경영을 전개하면서 전세계에서 반독점 논란을 초래했고 환경과 노동문제 등에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안티 코카콜라’ 바람은 미국 대학에까지 번져, 미시간대·뉴욕대 등 10개 대학이 교내에서 코카콜라 판매 금지를 선언했다. 한국에선 7월 독극물 투입사건이 터져 115만병이 리콜됐고, 지난 7월 초엔 캔 콜라 속 이물질이 발견돼 신문의 사회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농약 콜라’ 파동으로 인도 대법원은 120년간 극비였던 콜라 제조성분을 밝히라고 명령하고 나선 상태다.
1초마다 1만여명이 코카콜라를 찾고 있고, 하루에 30억병의 코카콜라가 소비된다고 한다. 작년 영국 브랜드가치 평가회사인 인터브랜드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지’를 통해 코카콜라가 673억달러어치의 브랜드가치로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을 제치고 당당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코카콜라는 5년 연속 브랜드가치 세계 1위 자리를 지킴으로써 구겨진 체면을 살렸다. 아직까진 영문자 ‘C’를 절묘하게 매치시킨 스펜서체(體) 로고와 여인의 ‘S’라인을 연상시키는 병 모양이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음을 밝혀주는 증거다. 펩시는 22위에 그쳐 지명도 부문에선 아직 코카콜라의 발 밑에 있음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