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
현모양처는 여전히 이상적인 배우자
♣ 여풍당당 시대에도 전업주부 원하는 남녀 많은 이유
대학교 4학년인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다. 더욱이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서부터 ‘전업주부’
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 두고 (대부분의 인문계 학생들이 그렇듯) 그녀는 자기 '성적에 맞춰' 학교와 전공을 선택했고, 4년간의 캠퍼스 생활을 하며 연애도 더러 했지만, 현재는 싱글인 23세의 예비 직장인이다. 사실 졸업 학점도 나쁘지 않고 외국어에도 능해서, 여느 중견 기업에 취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펙’의 그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최대한 일찍 결혼해서 '젊은 엄마'가 되겠다는 그녀의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남편에게 따뜻한 밥 챙겨주고, 토끼 같은 자식들 낳아 열심히 키우면서 잘 살 자신
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녀는 22살때부터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결혼정보업체의 회원
으로 등록했고, 동기들이 자격증 따위에 목숨 걸 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졸업이 가까워 오면서 이런 그녀를 주위에서 ‘가만 놔두지’ 않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님과 진학상담 중, 최대한 빨리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더니 교수님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도피 결혼'에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4
년간의 수학이 아깝지도 않냐는 둥하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어지간히 애를 쓴 모양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친구들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도 초지일관 반대 행렬에 한 표씩 거들고 나섰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여성들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며, 모두들 그녀가 사회에서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독려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현모양처의 꿈이 '쪽팔린' 사회. 전업주부로 살기 ‘힘 든’ 시대가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맞벌이가 당연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여성의 꿈이 '주부'라고 하면, 마치 남자 등이나 쳐 먹는 여자가 되고 만다. 초중고 시절 여학생들의 꿈은 그 어느 때 보다 '거창'해졌고, 아이들 소꿉놀이에서 조차 이제 ‘맞벌이 모델’이 유행이다. 더욱이, 고등교육이라도 받은 여성이라면 이제는 어디 가서 '내 꿈은 전업주부' 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사회가 되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주부는 아무나 할 수 있다'란 오해가 만연하기 때문일 텐데, 과연 그럴까?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 것이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 보다 가치 없는 일이라 누가 말하겠는가? 나처럼 전문직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안다: 검사나 의사도 아무나 못 하 듯, 한 집안의 '안살림'도 아무나 못 하는 것을! 그럼으로 전문직이나 연예인이 꿈이듯 전업주부 또한 엄연한 직업으로써의 목표로 충분하다. 2012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 중 74%가 싱글, 돌싱이거나 딩크족이고, 대한민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도, 끝내 결혼이나 육아 경험은 없다. 주부라는 '업'은, 그만큼 다른 일과 병행하기 힘들다는 반증 아닐까?
3-4년 전 내가 결혼을 고민할 당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 중 하나는 '절대 셀러리우먼이 아닌 여성' 이었다. 10년차 월급쟁이로써, 나 같은 '봉급의 노예'가 싫었다고나 할까? 조금 덜 쓰며 살더라도, 출근할 때 입맞춤을 해 주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는 아내가 좋았다. 여행이라도 갈 때면 내 스케줄만 신경 쓰면 되고, 그것이 크던 작던, 내가 주는 생활비를 진심으로 감사해 주는, 나는 그런 아내가 좋다.
맞벌이를 하는 내 여자 후배 중에, 월 250 벌어서 그 중에 200은 '아주머니' 준다는 녀석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내 아내가 전업주부인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느낀다.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는 직업이 있으면 모를까, 나는 내 아내에게 사회 생활 시키면서까지, 월 이백짜리 '아주머니'에게 내 아이를 맡길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참 빠르게도 변하는 대한민국이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 봐도, 어느새 맞벌이가 팽배한 사회가 되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해졌고, 그것이 우리 나라에 가져다 준 이점 또한 많을 것이다. 다만, ‘현모양처’와 사회적 성공 간의 이 해묵은 간극 또한 최고치에 이르렀다. 내가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여성들에게 '무조건 집에 있자'고 하는 얘긴 더더욱 아니다. 다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직시하여,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당당해지자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따뜻한 저녁상의 가치를 아는 남자들이 여전히 많고, 전업주부가 꿈인 여성들 또한 수두룩하다. 하지만 왠걸, 손 한 번 들어보라고 하면 다들 선뜻 ‘그렇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눈치다. 남자들은 '돈의 여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여자들은 '경제적 독립'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다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부 중에, 둘 다 벌지 않으면 '정말 안 되는' 커플은 과연 몇 커플이나 될지 궁금하다. 실제로, 내 지인들 중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기 보다, 남편 눈치 보여서 못 그만 둔다는 여성들이 더 많다. 삶의 질? 아이들에게 있어, 엄마가 집에 있는 것 보다 더 낳은 ‘삶의 질’은 없다.
인간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아무리 ‘공부’ 따위를 많이 했어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느낀다면, 그것을 꿈 꾸고 추구하는 데에 있어 망설이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에 전업주부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아이들은 행복해지고, 남편들은 건강해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