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대한 인식변화
유책주의 vs 파탄주의
날 살해된다. 범인은 아내였다. 간병 도중 남편이 36년 전 불륜을 저지르고 사과했던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죽였다는 것이다. 최근 도쿄지방법원은 “50년 동안 추억에 즐거
운 일도 있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고 살라”며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
했다. 아무리 오래전 얘기라고 해도 배우자의 외도란 용서할 수 없는 죄인가 보다.
만약 남편이 건강했다면 할머니는 이혼을 선택하고 우발적 살인을 피할 수 있었을까.
♡ 이혼은 협의 이혼과 재판상 이혼으로 구별된다. 부부가 서로 합의한 협의 이혼과
달리 재판상 이혼은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의 합당한 이혼 사유가 있어야 이혼을 청구
할 수 있다. 법원은 1965년 이후 ‘유책주의(有責主義)’를 도입해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이혼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파탄주의를 채택
했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 청구를 인정한다.
♣ 바람피운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마련됐다. 15년 동안 다른 여자와 동거해 혼외 자녀를 낳은 남편이 법적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 상고심이 계기다. 이혼에 대한 인식 변화에 맞춰 현행 유책
주의를 파탄주의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두 여성 변호사가 뜨거운 공방을 펼쳤다.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 증오만 키울 뿐”(김수진 변호사) “부정행위로
혼인을 깨 놓고 관계가 파탄됐으니 해방시켜 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보호할 수는
없다”(양소영 변호사)는 주장이 맞섰다.
♠ 유책주의는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쫓아내는 ‘축출 이혼’을 막는 데 기여했다.
요즘은 거꾸로 50, 60대 남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족 부양을
위해 일밖에 몰랐던 남편이 퇴직 이후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를 받았을 때 방패막이로 삼
는다는 것이다. 반세기를 이어온 유책주의가 과연 언제까지 파탄주의의 거센 도전을
막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