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언

오늘

돌체김 2016. 1. 24. 14:56



오 늘
                   - 구 상 -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하루는 강물의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지금 순간에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무엇을 하라고 하시나요? 세상 걱정을 ‘잠시’ 접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잠시’ 예수님께 시간을 내드립시오. ‘잠시’는 ‘영원’과 연결된 순간이 것입니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 …… 버리면 얻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공지영, 『수도원 기행』).

무엇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해서 얻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버리면서 얻는 것입니다. 구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얻어도 더 큰 목표가 생겨 만족이 있을 수 없는 얻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리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덤으로 얻는 기분이므로 만족과 기쁨이 함께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면서 하느님에게서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버리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온전히 의탁하고 자신을 송두리째 봉헌한 많은 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도합시다.

어쩌면 저에게 오셨던 분들도 하느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양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을 나름대로 잘 교육시킨 다음에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드려야 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버지 사이에는 그 관계를 단절하는 구름이 가로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구름은 바로 아버지를 크게 여기지 못하는 저의 교만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크게 여기는 교만이 바로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 교만으로 하느님과 단절되게 된다면 누구도 올바로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지켜낼 수 없고 다시 아버지께 돌려드릴 수도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교회의 첫 수장인 베드로를 끊임없이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의 교육은 베드로를 머리 숙이게 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첫 물고기를 많이 잡는 기적 때에는 베드로가 드디어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고 예수님께 떠나가 주실 것을 청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물고기가 아닌사람잡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교회의 수장이 되고 하느님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은 베드로가 교만해져서 예수님이 돌아가셔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사탄!’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교만해져서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풍랑이 일어 배가 가라앉게 생겼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깨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서는 자기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겸손해져서 자신 안에 있는 예수님을 깨울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예수님은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모자랍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걷게 되기까지 겸손해졌지만 큰 바람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하게 된다는 것은 교만해져서 하느님이 아닌 자신을 믿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을 믿게 되어서 선악과를 따먹고 그렇게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드디어 스스로 완전해 진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다 주님을 떠나도 자신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지킬 것을 장담합니다. 그러나 유다가 한 번 배반한 그 밤에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이 있은 후 닭소리만 들으면 눈물을 흘려서 눈물 골이 얼굴에 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겸손해 졌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양떼를 베드로에게 맡기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당신의 양떼를 잘 돌보지 않을 텐데, 사랑은 곧 낮아짐이기 때문에 자신의 양들을 맡길 베드로를 완전하게 겸손하게 만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구약에선 처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울에게 맡기셨습니다. 사울은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교만해져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말렉 족속과 짐승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라고 하셨지만 사울은 가치 없는 것들만 죽이고 왕과 좋은 짐승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이에 하느님의 분노가 일고 그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빼앗아 다윗에게 넘깁니다.

사실 다윗은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그 역시 교만하였습니다. 만군의 야훼께서 그의 모든 전쟁을 승리하게 해 주셨지만 그는 호적조사를 통해서 자신의 군사 숫자를 알려고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이끌어보겠다는 교만입니다.

게다가 그는 음란하게 되기까지 하여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죄를 짓고 맙니다. 죄는 그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낳았던 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나라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백성은 솔로몬의 손에 넘어갑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있었지만 사실 그 지혜 때문에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백성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수많은 공주들과 혼인을 하고 그 이방 공주들이 가져온 이방 신에게 예배까지 드렸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함을 넘어서서 재물에도 집착하여 드디어 나라가 갈라지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죽고 맙니다. 그의 아들 때에 반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바로 세금을 많이 걷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교만은 음란을 낳고 음란은 재물 욕을 낳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데, 검사는 매우 높은 위치이고 그래서 남을 판단하며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들이 교만해지면 접대를 받고 돈을 받는 등 타락의 길로 저절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공정해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교회를 탄생하게 했고 그 교회를 순종을 통한 아버지와의 일치로 한 영혼도 잃지 않고 아버지 손에 바치셨습니다.

오늘은 착한목자 주일이고 성소주일입니다. 단 하나만 알면 될 것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만이 많은 영혼을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고 그 영혼들을 잃지 않고 아버지께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