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임원- 불쌍하고 가련한 장년의 샐러리맨

돌체김 2010. 1. 29. 18:34
대기업 임원은 군대로 치면 장성(將星)급이어서 '샐러리맨의 별'로 불린다. 임원의 어깨에 달린 별은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비록 30대 말부터 대기업 임원으로 행세했지만 오직 불쌍하고 가련한 장년의 샐러리맨에 불과했다…." 장편 실화소설 '화려한 주식 사냥'(김성길)에서 대기업 전무가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뱉는 넋두리다. ▶한 대기업 임원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회의를 거듭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접대를 겸한 저녁 모임이 거의 매일 열린다.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출근해야 한다. 100대 기업의 임원 평균 나이는 51.7세다. 연말 평가가 나쁘면 언제든 해고된다. '임원은 임시직'이라는 자조(自嘲) 섞인 말도 있다.

삼성전자 부사장 이모씨가 51번째 생일에 평소 입에 대지 않던 술을 혼자 마시고 투신자살해 큰 충격을 줬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이씨의 연봉은 10억원 안팎이었고, 60억원 넘는 주식을 지녔다고 한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2년 연속 좌천(左遷) 인사를 당하면서 쌓인 굴욕감이 안타깝고 허망한 마지막 선택을 강요한 듯하다. 유서에서 그는 부서 이동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지금껏 숨가쁘게 달려오던 삶이 주춤거리면서 우울증도 앓았다고 한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에 걸려 몇 차례 손목을 그었던 소설가 차현숙은 자전소설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에서 투병 체험을 고백했다. '멍한 상태에서 알 수 없는 자살충동, 엄청난 죄의식, 사람들과의 불화,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불안감과 공격성과 허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한 정신건강 컨설팅업체가 최근 4년 기업임원 400여명의 심리를 분석했더니 80%가 "무조건 전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호소했다. 숨진 삼성전자 부사장의 지인은 "평생 좌절을 모르다 최근 맛본 좌절에 성급한 결정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다"고 했다. 초고속 승진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이씨에게 필요한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닌 '느림'의 여유였다. 숨가쁜 경쟁에 휘둘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