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 앞에 선 남유럽의 국민 저항이 우리를 13년 전 회상에 잠기게 했다. 지금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에선 재정 긴축에 반발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차량을 불태우는 장면이 연일 외신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13년 전 IMF 위기 때 우리는 달랐다. 화염병을 드는 대신 온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모았다. 구조조정 칼바람 속에서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내몰렸지만 저마다 눈물을 삼키며 받아들였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킨 울음범벅의 국난(國難) 극복기(記)는 두고두고 세계인의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은 참 희한한 나라다. 그토록 싸우고 서로 욕하면서도 공통의 목표만 있으면 한데 뭉쳐 놀라운 저력을 내뿜는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이 그랬다. 이념과 안보와 복지를 놓고 두 개로 쪼개진 듯 보였던 나라가 국가목표 앞에서 완벽하게 하나가 됐다.
사실, 결과는 두 달 전 이미 예견됐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발표한 조사에서 한국민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지하는 비율은 87%에 달했다. 60% 내외 지지도에 그친 독일·프랑스를 처음부터 이기고 들어간 것이다.
강원도민 2018명이 'I Have a Dream'을 합창하고, 그 바쁜 대기업 총수들이 지구를 몇 바퀴씩 돌며 자기 일처럼 뛰었다. 반드시 따내겠다는 '국가 의지'에서 우리는 경쟁국을 압도했다.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대선으로 온 나라가 갈렸던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충돌했다. 환경 복원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최악의 오염사태였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것은 공동체의 힘이었다. 그해 겨울, 태안 갯벌엔 3개월 동안 123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찾아와 손으로 기름을 닦아내며 기적을 만들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미쿠니 유조선 사고(1997년) 때의 '3개월간 30만명' 기록을 4배 웃돈 것이었다.
한국인의 DNA에는 태생적으로 강렬한 공동체 목표의식이 새겨져 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직원이 회사를 위해 과로사(死)의 위험도 서슴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인류사에 유례없는 압축성장의 기적을 이뤘다.
역사의 주요 대목마다 우리는 폭발적인 공동체 에너지를 발산해왔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목표가 있을 때 흥했고, 없을 때 쇠퇴했다.
2001년 IMF 체제 졸업 이후 우리는 분명한 국가목표 없이 방황해왔다. 선진국가냐 복지국가냐, 선택적 복지냐 무상복지냐를 놓고 논쟁만 이어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국력(國力)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2004년 11위였던 경제규모는 인도·러시아·호주·멕시코에 추월당해 15위로 내려갔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몇몇 대기업의 약진에 취해 있는 사이 나라 전체로는 뒷걸음쳤다.
심지어 전 세계 중간만큼도 성장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8년 새 우리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보다 높았던 것은 두 해뿐이다. 고령화나 연금·재정위기처럼 국가 존망이 걸린 과제엔 손도 못 댄 채 시한폭탄처럼 끌어안고 있다.
이런 과제들을 다 정치에 떠넘길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정치 몫이다. 이념과 정파를 아우르며 통합된 국가목표를 제시할 정치 리더십은 언제 출현할까. 국가목표만 정해지면 다시 훨훨 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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