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간 무료라 가입한 서비스, 별 필요 없어도 그냥 놔두게 돼
소유한 것 포기할 때의 고통이 얻을 때 느끼는 희열의 2배
기업·사회도 현상유지 선호… 좋은 판단 유도하는 시스템을
- ▲ 뜨거운 물에 던져진 개구리는 화들짝 놀라 뛰쳐나온다. 반면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결국 죽고 만다. 개구리처럼 기업도 외부 환경 변화를 제때 인지해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을 기약하기 어렵다.
휴대전화를 새로 가입할 때 여러 가지 부가서비스를 1개월간 무료로 사용해 보고, 싫으면 해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신회사 직원으로부터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연 필요 없는 부가서비스를 1개월 후 해지했는지 생각해 보라. 별로 필요는 없지만 해지하지 않고 해당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계속 지불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변화는 필요한 것입니까?"라는 질문과 "당신은 변화를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왜 인간은 변화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막상 변화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왜 많은 경영자가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는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결국 큰 낭패를 보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면 많은 경영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현상유지의 함정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애착을 갖고, 이를 잃는 것을 싫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을 포기할 때 느끼는 고통이 같은 것을 얻을 때 느끼는 희열보다 2배 정도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인간의 손실회피 성향을 관성효과(inertia effect) 또는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한다.
손실회피 성향은 인간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쳐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에 집착하게 만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현상유지 현상'을 초래한다. 같은 물건에 대해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가치평가가 크게 달라 흥정이 깨지거나 주식시장에서 하락하는 종목을 쉽게 손절매(損切賣)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이런 비(非)이성적 심리를 이용해 이익을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신회사가 무료 가입 조건으로 부가서비스를 팔아 부가수익을 올리는 것이 그러한 예다. 하지만 기업 자신도 이 같은 현상유지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장(死藏)되는 기발한 대안들이 얼마나 많은가.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가능한 대안 중에서 과연 가장 좋은 선택인지 아니면 단순히 가장 편안한 선택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조직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귀차니즘의 사회적 비용
현상유지의 함정은 '귀차니즘'이라는 또 다른 함정에 빠져들게 한다. 귀차니즘이 개인이나 한 기업 차원의 문제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때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커다란 손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개인적 피해보다는 어떤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를 비이성적으로 선호하는 특성이 있다. 이를 부작위 편향(不作爲偏向·omission bias)이라고 한다.
예컨대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소송(개인적 피해)이 두려워 포기한다면, 이는 인류의 건강과 관련해서는 큰 손실(사회적 피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신약의 부작용에 대한 처벌은 존재하지만, 신약을 개발하지 않아 많은 이들을 병마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데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사회는 없다. 많은 조직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방관자들이 많은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더 치른다. 이런 사회적 비용은 결국 개인의 비용으로 전가(轉嫁)된다.
하지만 인간의 귀차니즘 행태를 역으로 잘 활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기 기증 제도를 생각해보자. 장기 기증률이 저조한 나라의 경우 보통 그 제도가 선택가입(opt-in) 방식인 경우가 많다. 즉 장기를 기증하지 않는 것이 기본 룰이고, 장기 기증을 원할 경우 일부러 신청해야 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선택 탈퇴(opt-out) 방식(태어날 때부터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기본 룰이고, 장기 기증을 원하지 않을 경우 따로 신청하는 제도)을 시행하는 나라의 경우, 장기를 구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는 사람들이 장기를 기증한다는 기본 룰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습성 때문이다.
기업이나 정책 입안자나, 중요한 전략을 구상할 때 떠들썩하게 모여 앉아 구호성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심리 행태를 고려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기업 가운데 환경의 변화에 둔감해 전략적 실패를 경험한 예가 수없이 많다.
기존 음반업체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냅스터(Napster·음악파일 공유 사이트)서비스의 위협을 예상하지 못했고, 세계적인 필름제조업체인 아그파(Agfa)포토와 즉석카메라인 폴라로이드(Polaroid)는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발전을 감지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났다.
변화에 둔감하면 비윤리적 행위를 초래하기도 한다. 기업윤리와 관련한 예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엔론(Enron)의 회계부정 사례다. 엔론 사례를 얘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도덕한 몇 명의 최고경영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면서 외부 감사업체와 엔론이 결탁해 회계부정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엔론의 회계부정사건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외부 감사업체는 자사의 큰 고객인 엔론을 계속 고객으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조그마한 회계 사안을 엔론에 유리하게 처리해 줬을 수도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에 옷 전체를 다시 입어야 하듯 이런 조그마한 회계 해석상의 잘못이 누적돼 자신도 모르게 큰 부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미끄러운 경사(slippery slope)'라는 말이 있다. 경사면에 들어서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조금씩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표준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되면 처음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를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표준에서 벗어나는 조그마한 편차들이 누적되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미래에 대한 혜안과 함께 미세한 변화라도 즉시 알아차리고 거기에 걸맞게 자신과 조직을 부단히 변신시키려는 의지이다. 결국 세상에 살아남게 되는 종(種)은 가장 힘이 센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능숙한 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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