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교실

탁구는 삶의 활력

돌체김 2012. 5. 25. 10:34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요즘 은퇴한 남편과 함께 탁구에 입문해 그 재미에 흠뻑 빠졌다. 탁구는 계절과도 상관없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실내 운동이라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우리 부부에게는 아주 적합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잡아보는 라켓이 어색했지만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점차 익숙해졌고, 회원들과 경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도 붙었다. 복식경기를 하다가 상대방이 실수하면 개구쟁이 마냥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내가 스매싱한 공이 네트를 넘어 제대로 꽂히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 회원들과 게임을 마치고 활짝 웃는 남편의 얼굴에도 푸른 신록 같은 평화가 느껴진다.

우리 부부가 탁구를 시작하게 된 사연은 좀 남다르다. 5년 전, 남편은 뇌경색으로 말을 잃어버렸다.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의 전두엽 손상으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인지, 판단 등 지식인으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어장애는 오른쪽 마비를 동반했지만 다행히 다리는 비켜갔다. 온전히 걸을 수는 있지만 오른손은 근육에 힘이 없어 콩 한 쪽도 집을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남편은 자괴감에 빠져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시로 치미는 울분은 가슴을 치면서 통곡이 되었고, 말을 못하는 상실감은 심한 우울증세로 나타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원망과 분노로 혼란스러운 날들을 거치면서 남편은 차츰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결국 스스로와 타협했다. 집 근처 체육관의 탁구장에서 많은 사람이 라켓을 휘두르며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 날 당장 등록을 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원래 오른손잡이였지만 마비가 와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어 차라리 멀쩡한 왼손으로 다시 시작하면 어떨지 코치선생님과 의논을 했다. 적중했다. 나날이 늘어가던 남편의 왼손 탁구실력은 경기를 할 만큼 올라왔다. 남편이 탁구장에서 자신감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나도 뒤따라 레슨을 받고 같이 남편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탁구 부부'가 되었다.

2.5g의 작은 공은 원망과 분노를 버리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해줬다. 체념하고 살던 우리 부부에게 탁구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준 활력소가 되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탁구와 함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꾸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