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닦기
안경을 쓰는 사람은 늘 안경을 닦아야 합니다.
안경이 더러워지면 계속 눈에 거슬려 신경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안경을 쓸 때마가 이 일은 그치지 않을 것이고
잘 보려면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잘 관리하지 않게 됩니다.
아마도 그리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별로 불편하지 않은데 굳이 깨끗하게 닦아낼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부터 동양의 선비들은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거울에 욕망의 때가 잔뜩 붙어 있으면 참되고 진실한 것을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게 되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걸려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 안의 욕망이 나의 마음을 가리지 못하도록 자주 닦아내는, 깨어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방심하여 욕망을 닦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어느 틈에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은 이기적인 선택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 마음의 거울이 더러워져도 전혀 불편하거나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크게 죄를 짓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사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피곤하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지요. 그냥 남들 하듯이
나도 적당이 세상과 타협하면서 모나지 않게 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삶이 결국 환경을 오염
시켰고, 아이들의 미래를 힘겹게 만들었고, 저출산과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가져왔습니다. 집단이기주의를 만연하게 하였고, 끊임없는 이념의 대립으로 불복 하는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양국화 사회를 만들었
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만든 이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외치고 계십니다.
"때가 차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다시 마음을 돌이켜
욕망의 티끌을 닦아 내고 주님이 비추시는 하늘나라의 빛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계속 내 안을 비추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욕망의 티끌을 닦아 내야
합니다. 마치 안경을 닦듯이 말입니다.
- 이근덕 헨리코 신부
♣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소명
그리스도의 모상으로서의 인간
인간 구원의 여정에 최후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모상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이로써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계획이다.
인간 구원 역사 안에서 참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 할 필수적인 길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리스도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일치(1고린 1,9)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인간을 완전하게 변화시키는 생명을 선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것이다. 우리 인간은 처음의 인간 아담으로부터 단지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
(1고린15,47~49)를 유산으로 받았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
될 수 있게된 것입니다. 지금 이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하늘에 속한 그 분의 형상
의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1고린 15,49)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다"(로마 8,29)
인간은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 모두가 너울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바라보
듯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주님과 같은 모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
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겨가고"(2고린 3,18)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모상을 얼마 만큼이나 완전하게 자기 자신
안에서 다시 실현시키는가 하는 인간 실현의 본질적인 사명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삶은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을 제시해 주시는 하느님(1요한 3,2)과의 견고
한 일치에로 인간을 인도하면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 모습을 실현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