默想, 기도

추기경님을 보내며

돌체김 2009. 2. 20. 10:34
추기경님을 보내며 - 소설가 한수산
“추기경님이 잡아주신 제 오른손이 자랑스러워
사흘 동안 왼손으로 세수를 했습니다
그 사랑과 존경이 오래오래 넘치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가시는군요. 이제 이렇게 가시는군요. 다 이루었다고, 다 마치셨다고 이제 주님께서 부르시는군요. 주여. 어느새 그때가 왔습니까. 추기경님을 보내야 하는 그때가 벌써 왔습니까.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은 다리였습니다. 어둡던 시절에는 길을 알리는 먼 불빛이셨고, 출렁이는 시대의 물결을 두려움 없이 건너가게 하시던 다리였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나날은 동시대인에게는 위안이었고, 함께 있기에 가질 수 있었던 행복은 희망이 영그는 밭이었습니다. 추기경님. 아, 오래오래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우리는 추기경님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존경을 넘어서는 사랑이었습니다. 추기경이라면 저희들 가톨릭 신자에게는 하늘처럼 높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고개를 아파하며 바라봐야 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신부가 아니라 평범한 한 가장으로 살고 싶었다는 젊은 날의 추억까지도 잊지 않으시던 다감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추기경님이 백두산에 올라 찍은 사진을 보며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요. 안개 가득한 천지를 내려다보며 서 계시는 그 자리는 바로 제가 긴 방황 끝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던 그 자리였습니다. 추기경님이 서 계신 곳에 나도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감격할 수밖에 없는, 추기경님은 저희들에게 존경과 사랑이었습니다. 명동성당에 계실 때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잡아주신 제 오른손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저는 사흘 동안 왼손으로만 세수를 했었답니다. 그 사랑과 존경이 우리 곁에 오래오래 넘치도록,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1980년대의 그 어두웠던 세월,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군 추모 미사에서 정권을 향해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은가” 외치는 추기경님이 우리 곁에는 계셨습니다. 6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실 때, 힘들고 가난한 자를 위해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믿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늘 바라신 것은, 이 땅에서의 용서와 화해와 일치 그것이었습니다. “화해와 일치는 남을 받아주고 용서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며 우리의 상처를 다독이실 때 우리는 비로소 미움을 넘어서는 더 큰 용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보내야 합니다. 한 시대의 어른을, 어렵고 흔들리는 세파에서 언제나 꿋꿋하게 우리 편에 서 계셨던 기둥을, 우리의 다사로운 이웃이었던 분을 이제 보내야 합니다. 하느님. 남아 있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우리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추기경님, 저희들을 기억하소서. 한수산 (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세례명 요한 크리소스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