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하느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질병인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은 '죄의식'이라고 합니다.
죄의식은 인간의 원초본능(id/libido)과 초자아(super ego)의 갈등에서
생긴다고 합니다.
초자아는 전통, 관습,종교 등 이며 인간의 본능이 이런 것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 죄의식이 생긴답니다.
사람이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길이 살길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초자아로부터
자유로로워야 한다' 그러려면 종교가 사람에게 죄의식을 자아내기 때문에 아예
종교를 버려야 한다고 비판하며 종교는 사람을 구원하지 않고 오히려 죄의식만
조장한다며 비판을 받기도하였습니다.
본래 선도 없고 악도 없기에 죄도 없는데 종교가 인위적으로 만든거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로 죄는 과녁을 빗나간 상태를 뜻합니다.
죄의 정의는 어떤 특정 기준을 벗어난 것이지요. 성경에서 그 과녁에 해당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십계명이라 할 수 있죠
한자의 죄는 천륜과 인륜에 어긋남을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의 성립에 문제가 되는 척도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와 천륜과 인륜의 보편 타당성
여부입니다. 하느님은 존재하며 또한 양심,계율,천륜과 인륜 등은 동서고금을 통해
인정되어왔습니다.
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성경은 죄를 짓는주체는 인간이지만 인간의 죄짓도록 유인하는 악마, 곧 사탄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가장 큰 유혹은 사람들에게 '죄는 없다'는 신념을 갖도록 기만하는 것입니다.
유다인은 의인은 보상을 받을 것이며 악인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악인들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 때문에 벌을 받고, 의인들은 영원히 산다.
주님이 친히 그들에게 보상을 주시며 지극히 높으신 분이 그들을 돌봐 주신다(지혜 5,15)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삶과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용서를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예수님께서는 죄악, 불의, 폭력에 대해 비폭력적인 용서의 길을 선택하셨으며 그
용서를 통해서 무조건적인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제사로 용서를 완성하시고 나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이로서 '상선벌악'의 굴레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끔히 청산되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복수의 법칙을 용서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으셨으며 그
법칙이 해방의 길이며 생명의 길임을 몸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용서는 바로 '나'를 위한 것이며 내가 빠져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