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秋霜高節

돌체김 2013. 11. 11. 20:51

 

 

   옛날 사람들은 식물에다가 '군자'라는 호칭을 붙였을까?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군자는 믿고 의지할

만한 인격을 갖춘 사람 아니던가.

춥고 배고프면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외로울 때 평소 지나쳤던 산, 안개, 석양, 바위와 같은 자연이 눈앞에 다가오고

식물이 가슴속에 들어온다. 잘나갈 때는 식물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부도나고,

감방 갔다 오고, 이혼하고, 병에 걸려 피·땀·눈물을 흘리면서 도가 닦이고 시야가

넓어진다.

사군자는 옛날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 때 군자처럼 의지하던 식물 친구들이다.

매화는 퇴계 선생이 죽기 전에도 '매화에 물 주었느냐?'고 물을 만큼 좋아하셨다.

난초는 대원군이 그렸던 석파란(石破蘭)이 유명하다. 난을 그만큼 그렸다는 것은

대원군도 그만큼 춥고 배고픈 낭인 시절이 길었음을 말해준다. 국화는 중국에서

은자(隱者)들이 가장 살고 싶어 했던 여산(廬山) 자락에 들어가 살았던 도연명이

좋아한 꽃이다. 그의 국화 사랑은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

見南山)'이라는 명구로 남아 있다. 대나무는 양주팔괴(楊州八怪) 가운데 한 명인

정판교(鄭板橋)의 대나무 그림이 좋다. 대나무 잎에 소쇄(瀟灑)한 기운이 들어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군자 가운데 난초와 대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을 키워준다.

매화와 국화는 고통을 겪을 때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군자이다. 매화는 눈이 와서

춥고 배고플 때, 국화는 세상에서 밀려나 아무도 찾아오는 이가 없을 때 말을 걸

어온다. 그래서 매화를 한사(寒士)라고 불렀고, 국화를 은사(隱士)라고 불렀다.

국화는 마지막에 피는 꽃이다. 마지막에 핀다는 것은 다른 꽃이 다 피어 화려함을

자랑할 때에도 묵묵히 숨어 있다는 말이다. 말이 그렇지 숨어 있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얀 가을 서리가 내리면 그렇게 무성하던 초목의 푸른 이파리가 다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오직 국화는 그 서리를 맞고도 독야청청 홀로 꽃을

피운다. 추상고절(秋霜高節)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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