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묵상

내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말씀

돌체김 2014. 3. 2. 14:08

 

 

내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말씀 -게르하르트 바우어

 

♣ 말씀에서 찾는 더 나은 삶의 방향

 

하느님은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시고 우리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인생의 등대로 삼아,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겠습니다.

 

1. 하느님 말씀은 신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람의 한계를 더 질실히 깨닫게 된다고들 합니다.

하느님은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로 하느님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한없이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한 속죄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신비'안에만 있음을 깨닫게 되어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임을 믿기 어려워 하느님에

대한 의구심으로 혼란스러울 때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 당신이 저를 먼저 발견하지 못하셨더라면 저도 당신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신비이시지만 그러나 하느님은 침묵의 구름 속에서 세상을 향해 친절히 당신의 두 손을 뻗고 계십니다. 그 두 손은 말씀과 성령입니다.

 

우리가 존재의 이유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시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던 대답은 "나를 원하고, 내 삶에 동의 하며,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나를 지탱한다."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삶을 시작하는 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저희와 함께 할 것입

니다. 미사의 성찬전례에서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을 다 베풀어 주시나이다."(미사통상문, 감사기도4)

 

우리는 오늘 해야 할 모든 일에 하느님이 함께하시고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제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는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요한 14, 9-10)

말씀은 세상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는 말이자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즉 물피조과 자연을 아우르는 범우주적인 계시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1,20)

 

독일 신학자인 요한 미하에 자일러 주교는 "하느님의 소리를 하찮게 여기지 말고 모든 감각과 온 마음을 다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느님의 소리는 자연입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막지 마십시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느끼십시오,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매일 한 가지씩 공부하십시오"라고 조언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며 사람의 역사 안에서 큰일을 이루십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그분과 비숫하게 창조된"(창세기1,27) 사람은 하느님이 진지하게 의견을 받아들이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신 동반자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받아 주시며 사람을 위해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 울부짓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3,7)

 

인류의 불행과 구원의 역사는 첫 세대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아는 하느님이 계약의 무지개를 피조물들 위에 어떻게 펼치시는지를 목격한 증인이 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시작하는 처음이 되었으며, 모세는 그 백성을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위해 움직이시고 사람과 함께 실천합니다. "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에제37,14)

 

저는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때, 신앙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큰일을 이루셨고, 제 인생의 역사도 이루셨지요. 저는 '저의 말' 곧 '저의 응답'을 드리려고 노력했습나다. 제 삶에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응답으로 인해 '저의 응답'은 제 삶에서 새로운 빛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하느님을 완전히 살아 계신 분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발자취를 객관적으로 되새겨 보는 것은 살아가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이 운명이나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그 모든 일들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진지하게 하느님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입니다.

 

♣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기록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에는 책이 아니라, 역사이며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형태로 기록된 성경을 이해하고 '모든 진리'를 깨달으려면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요한16,13)

우리가 믿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하느님이 몸소 우리에게 말을 건네실 것입니다.

 

♣ 사람의 말에 담긴 말씀

 

"우리는 또한 끈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1데살2,13)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을,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느 것입니다."(2코린4,7)

 

♣ 모셔 둘 것이 아니라 먹어야 할 양식

 

두개의 영속적인 양식- 하나는 그분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의 몸과 피를 내어 주는 성찬례입니다.

'말씀의 식탁'과 '빵의 식탁'-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처럼 말씀을 책자 속에, 가방 속에 넣어 둘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받아 모셔서 마음의 배를 채워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양식을 보고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2. 하느님 말씀은 초대입니다.

 

♣ 실천하게 하는 힘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히브4,12-13)

 

성경은 생각하거나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실행에 목적을 둔 말씀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라도 했다.

 

♣ 삶을 변화시키는 자극

 

하느님이 아담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너 어디 있느냐?"(창세3,9) 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아담은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3,10)라고 대답했습니다.

"너 지금 어디 있느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날 좀 바라보겠느냐?" 이처럼 하느님이사람에게 하시는 여러 갖 질문들은 일생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하느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질문들은 단순히 생각해 보면 질문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질문을 자기 것으로 삼아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면 불안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우리에게 좋은 자극이 됩니다.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던지셨던 짤막한 질문 몇 가지만 보더라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힘과 의미가 있는지, 또 얼마나 깊이가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질문들은 한순간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숙고 함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인생관과 신앙관을 새롭게 정리한다면 삶은 온전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성경속의 질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루가22,35)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14,31)

베드로에게는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르14,37)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신 다음,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

으냐?"(요한6,67)하신 질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저자가 경탄하면 했던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라는 질문도 있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저자인 마크 트웨인은 "내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성경 구절들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성경 구절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일생 동안 우리를 따라 다니지만 일생 동안 우리가 따라 잡을 수 없는 바로 말씀들이 오히려 우리의 삶에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성경 속 질문들을 오늘 자신에게 던져 봅시다. 성경만이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겸손하게 질문하며, 믿음으로 성경에서 답을 구합시다.

 

♣ 응답을 기다리는 말씀

 

하느님의 부르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이 계시로써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 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 신다."

 

이리하여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인

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히 진리 안으로 이끄

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성히 머물도록 하여 주신다."(제2차 바티칸공

의회 계시 헌장)

 

우리는 성경 말씀이 대화를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성경의 말씀은 씨앗과도 같아서 삶이라는 땅에 뿌려질 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 말씀의 씨앗이 삶을 변화시키고 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꽃을 보고, 그때야 비로소 씨앗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과 같다." 또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성경 말씀을 알려면 알맹이가 드러날 때까지 오랫동안 단단한 껍질을 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평생 성경 말씀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은 응답을 요구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귀를 기울이기를 요구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6,5)

어린 사무엘이 자신을 부르는 하느님에게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9)라고 응답했습니다.

 

♣ 하느님이 초대하시는 미래

 

하느님은 미래로서 언제나 우리를 앞서 가십니다. 창조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일어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여기에서도 창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어루만지시며 생명을 선물해 주십니다. 창조력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에서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가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느님으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우리의 수준을 뛰어넘는 새로운 창조 사업으로 초대하십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냐?"(이사43,18-19)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3)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읽고 깨달은 것들을 한평생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아래에 있습니다. 설령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씀을 전할 자격과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 말씀의 나무에 열리는 열매

 

평화주의자 막스 요제프 메츠거 신부는 감옥살이 중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성경의 소중함을 "나는 매일 성경에서 주님의 '행복 선언'을 읽으며 언제난 새로운 기쁨을 느꼈다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에레15,16)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이 말씀은 언제나 저를 일으켜 세웠고, 모든 두려움을 떨치게 했으며, 저에게 의연함과 기쁨을 선물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양식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외하고는 아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외에 우리의 영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영혼에 필요한 것 또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만족과 양식, 기쁨, 빛, 지식, 정의, 진리, 지혜, 자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좋은 것을 풍성하게 얻습니다.

 

♣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분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성령의 빛을 청하면 성경 본문을 깊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그분과 더 생생하고 본질적인 대화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기도이지요.

 

암브로시오 성인도 "교회 안에서 믿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다시 하느님과 함께 낙원을 거닐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회 안에서'라는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우리는 성경 말씀을 교회 안에서 읽고 있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우리에게 성경을 전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몸소 우리와 함께 성경말씀을 읽고 계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본문은 이미 완결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를 읽으면서 우리의 삶에서 성경을 계속 써 나갑니다.

성경은 어떤 점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이해하고 실천할 때 그본문은 생명력을 갖게 되고, 새로운 색깔을 내개됩니다. 거룩한 독서라는 뜻을 가진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는 성경의 특정 구절을 천천히 묵상하며 읽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성경을 묵상하며 읽으면 늘 새롭고 분명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하느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당신이 기도할 때 하느님이 당신의 말을 들으십니다. 기도는 당신이 하느님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리스의 신학자인 오리게네스는 " 성경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시는 연애편지이므로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에 전념하고 끈기 있게 그것을 행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믿는 마음으로, 그분 마음에 들려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는 일에 몰두해 보세요. 성경을 읽다가 닫힌 문 앞에 서게 된다면 문을 두드려 보세요. 그러면 파수꾼이 당신에게 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예수님도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루카11,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문을 두드리고 구하기만 하는 것에 멈추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은 때에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행동하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어떤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면, 그 말씀에 몰입하여 결과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예수님도 산상 설교에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세웠기 때문이다."(마태7,24-25)

 

♣ 삶을 나누는 경험

 

오늘날 성경을 묵상하고 나누는 것은 본당, 구역 공동체 그리고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관해 묵상한 바를 서로 나눕니다.

'영적 독서'와 마찬가지로 '성경묵상 나누기에서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 따라서 묵상 나눔을 시작할 때 기도를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되새기고, 그것을 청해야 합니다.

 

묵상 나눔을 할 때에는 모임에 참석한 사람 각자가 하느님이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그 말씀 안에 머물려, 그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나누는 것은 삶을 나누는 일입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 모두의 것이 되고, 다른 이의 체험이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작은 교회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공동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명이나 정신을 자신에게서 분리할 수 없듯이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거하시고자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이 곧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됩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3. 하느님 말씀은 경이로움입니다.

 

♣ 가능성과 확신 사이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0-11)

 

성경의 '창조이야기가'가 명확히 밝히고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창조적이며 실재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무無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하느님이 말씀하

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무에서 피조물을 창조하고 역사에 개입하며 새로운 것음 만들어 냅니다. 

 

"보라 , 예전에 알려준 일들은 이루어졌고 새로 일어날 일들은 이제 내가 알려 준다. 싹이 트기도 전에 내가 너희들에게 들려준다."(이사42,9)

예수님도 그러한 권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1,40)라고 말하는 나병환자에게 가엾은 마음을 품으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개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1,41) 이처럼 하느님은 스스로 말씀하신 바를 실현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너는 내 사랑을 받는 자녀다."(요한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이 말씀에 의지하여 산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찬 전례 때 빵과 포도주의 예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 자신은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또 고해성사의 화해 예식을 통해 통회의 마음을 담아 죄를 고백하면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평안히 가십시오!"라고 확실한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선언된 것이며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합니다. 우리는 몇 주가 지나도 이 말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의 말조차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가장 큰 죄라며 꾸짖으셨던 것은 다름아닌 부족한 믿음이었습니다.

에수님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11,23)

 

우리가 누군가를 걱정할 때 또는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유익한 일을 하시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을 하느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 빛을 부를 때 떠나가는 어둠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3,21) 우리가 복음에 자신을 맡기면, 어느덧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의 표현처럼 체험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의 운명을 되돌리실 제 우리는 마치 꿈꾸는 이들 같았네, 그때 우리 입은 웃음으로, 우리 혀는 환성으로 가득하였네,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께서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시편126,1-3)

 

♣ 인생을 바꾸는 부르심

 

성소는 부르심, 곧 하느님이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외부의 질문인지 상관없이 그것은  "이 길을 가라!"하는 분명한 내적 소리입니다. 그 말씀에 응답한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마음에 평화와 삶에 대한 기쁨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내리며, 그 말씀이 성소의 출발점이 됩니다.

 

♣ 심오한 치유 방식

 

"그분께서는 아프게 하시지만 상처를 싸매 주시고 때리시지만 손수 치유해 주신다네."(욥5,18)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낫게도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상처를 주는 이유는 우리를 심오한 방식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려움 속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8,39)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힘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는 사람과 함께 성장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개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내적으로 성장시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읽고 나눌 때 교회는 내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는 그들 가운데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그리고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체험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함께 나누는 곳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가족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안에서,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중심을 말씀에 두고 살아가고자 희망합니다. 그러한 희망에서 멈추지 말고, 다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며 나누기 시작한다면, 본당과 공동체에 신선한 바람으로 작용할 것입니다.그리고 그 신선한 바람은 더 많은 교회를 일으켜 세우게 될 것입니다.

 

♣ 침묵속에 전해지는 울림

 

우리가 말씀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말씀이 아주 고요하게 우리 안에서 울려 퍼지

거나 심지어 우리 밖으로 넘쳐흐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 독서'는

대부분 하느님이 하신 말씀 안에서 고요히 머물고 쉬는 것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느님은 침묵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이 어두운 순간에도 당신 침묵의 신비로써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은 하느님 말씀의 중요한 표현중에 하나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오로지 고요함을 찾고, 일상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지며, 모든 문제와 두려움, 걱정, 미래에 대한 계획을 뒤로한 채 내적인 침묵의 공간에 들어갈 때 하느님은 비로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우리 마음은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가8,15)라는 구절처럼 좋은 토양이 되어,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마태13,8)나 되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자신을 믿는 말씀을 선택하는 용기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격려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하느님은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시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압도적인 힘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가5,1-10)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믿음과 불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호수 위에서 예수님과 함께 물 위를 걷고도 두려움 마음에 물에 빠진 베드로였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이러한 '이차적인 용기'가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경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네!"라고 응답하고 자신을 내맡기지만,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끈기 있게 버티지 못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믿음의 모습이 멊다고 느낄수록 더욱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9,24)

 

 

4. 하느님 말씀은 희망입니다.

 

♣ 항상 함께 머무는 사람들

 

  그리스도교는 책속에 '갇혀 있지' 않으며, 그 중심에는 형태를 취하신 하느님의 말씀,

곧 사람이 되신 말씀인 로고스가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천 번째 회칙(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의 '화신'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가지 사건이나,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는 그 사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사랑의 중심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을 간직하는 동시에 거기에 새로운 깊이와 넓이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의 종교로, 단순히 수동적으로 기록된 말씀이 아닌, 말씀이 사람이 된, 살아 있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이는 곧 말씀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심으로써 죄만 빼고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히브2,1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8)

 

이미 구약 성경의 여러 가지 표상들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랑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꼭 닮은 예수님에게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가운데 거처를 마련하셨고, 당신의 천막을 세우셨으며,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고자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

 

♣ 모든 말씀의 성취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6) 하느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은 당신 자신, 곧 사랑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일생과 함께하는 하느님의 역사는 사랑 안에서만 설명할 수 있고, 사랑 안에서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모든 일보다 앞서는 신비롭고, 위대한 희망이라 할 수 있지요

 

하느님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신 말씀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과 사랑, 죽음을 통해 그분의 마음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성광聖光'이 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은 오로지 당신의 사랑 안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율법과 모든 성경 말씀은 사랑으로만 성취됩니다. 자신이 성경을 적어도 일부라도 이해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아직 이해핮 못했다는 것을 드러낼뿐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을 경험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 사랑의 징표라고 확신 합니다.

 

♣ 한 말씀으로 시작도는 변화

 

"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이는 가톨릭교회의 전례에서 성체를 영하기에 앞서 모든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짧은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지요. 하느님은 '영성체'를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비로운 몸인 축성된 성체를 교회에 선물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짧은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성경에서 조금이나마 이해한 내용이 있다면 그 일부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를 사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말씀과 각오, 열정으로 내적인 일치를 이룰수록 참사람이 됩니다. 매 순간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만이 참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만남의 방, 사랑의 열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그분의 발자취와 목소리, 그리고 그분의 현존을 발견합니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라!" 우리가 거룩하고 고요한 장소에서만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은 하느님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분은 사물의 미세한 구멍 하나 하나에도 존재하시듯 우리와 항상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의 모든 말씀에 감각과 마음을 여십시오. 하느님의 목소리는 자연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여러분의 마음이자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모세와 예언자들,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한 계시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분의 음성을 흘려들어, 그분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또한 하느님의 목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지나간 과거의 역사와 다가올 미래에서 드러나는 모든 진리입니다.

 

하느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분의 말씀이 만들어 낸 아주 아름다운 교향곡이라 할 수 있는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과 만납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머무르든지 그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랑'이라는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그분과 분리되지 않으면 항상 그분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고유한 갈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갈망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를 기도하게 만듭니다.

 

♣ 말씀에서 찾는 인생의 암호

 

독일 신학자 로마노 구아르디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단어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그 단어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 함호와도 같다고 합니다. 그 단어는 힘인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하고, 사명인 동시에 약속이며, 당사자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그 단어가 작용한 결과이고, 그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며, 그 단어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멜로디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나고, 우리 인생을 두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된다 할지라도 오늘은 그 말씀에 차분하게 자신을 의탁해 봅시다.

 

♣ 두루마리에 담긴 비밀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1,4-5)

 

하느님은 영원함 속에서 우리를 인정해 주셨고, 우리를 원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삶에서 이루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묵시5,1)인 채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한 묵시록의 저자처럼 그 사실에 대해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리스도 예수님이 봉인을 뜯고 우리 인생의 두루마리를 펼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끝나고 하느님을 만나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사실이 명료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인생의 두루마리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또 우리 인생을 두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기대하고 확인하는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체험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인간관계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삶이라는 두루마리는 우리 인생의 두루마리가 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멈추니 않는 성장의 근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1,14)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심으로써, 구원에 대한 인류의 오랜 열망과 하느님 백성에게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면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던 우리 안에 하느님의 빛과 사랑이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대로 살게 되면 사랑은 빛을 낳고, 그 빛은 다시 사랑을 자라게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성장을 먼추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님도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우실 때까지 우리 안에서 계속 자라실 것입니다.

 

주님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심을 믿으며, 말씀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이끄시는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멘.

'복음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자로의 부활  (0) 2014.04.07
생명의 말씀  (0) 2014.03.09
[스크랩] 조지 뮬러의 평생 기도 수칙 6가지  (0) 2014.02.15
시복 결정  (0) 2014.02.10
성물  (0) 2014.02.02